"다만 악에서 우리를..,"

손자는 병법에서 승리의 조건을 ‘지피지기’. 즉,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에 달렸다고 하였습니다. 영적 싸움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적 싸움을 할 때 마귀는 처음부터 무섭고 포악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브에게 그랬듯이 매력적이고 그럴싸한 것을 들고 옵니다. 그래서 혹자는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먼지가 쌓이는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기독교작가 C.S 루이스는 이런 마귀의 전략을 <스쿠르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잘 전달해주었습니다. 여기에는 마귀의 31가지 전략이 담겨져 있는데, 저는 이 중에서 세 가지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CS루이스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마귀는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악을 생산합니다. 오늘날 마귀는 우리에게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무척이나 바쁜 생활 속으로 유도합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도통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유 없는 삶은 뭔가에 늘 쫓겨 다니게 하기 때문에 더 바쁘게 살아야 그 불안을 해소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신기류를 제공합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삶을 더 단순화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아울러, 영성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면에 쏟는 관심이기 때문에, 침묵과 고독, 진지함 속에서 영혼의 모든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성은 집회에 쫓아다니고 유튜브로 설교 말씀을 많이 들어야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은 여유를 가지고 외로움과 진지함 속에서 말씀을 알아가는 데 있습니다. 특별히 물질만능주의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여유를 가지려면 자족하는 삶을 지향해 나가야 합니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려다 보면 더 많이 쫓겨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자족하는 삶을 배워야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말씀과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잠 4:23)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빌 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니,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 둘째, 마귀는 교회를 자신들의 협력자로 만들고, 교인들로 하여금 감정을 흔드는 전략으로 악을 생산합니다. 마귀는 오늘날 성도들에게 음악이라는 풍성한 도구를 이용해서 말씀이 아닌 감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감동을 은혜의 증거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으면 진리보다 감정에 확신을 더 갖게 됩니다. 마귀는 그 틈으로 감성이 여린 사람을 교회와 사람의 종으로 만들고, 논리적인 사람을 교회 분열을 획책하는 도구로 활용합니다. 또한, 감정은 ‘말’에 가장 빠르게 반응합니다. 교회를 살리는 것도 말이고 무너뜨리는 것도 말입니다. 성경에서 ‘혀’는 지옥 불 위에 놓여 있고(약 3:6), 독으로 가득한 것(약 3:8)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을 수도 있고, 마귀의 종으로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은 반드시 두 번 생각하고 건네야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형제자매 간에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각별히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 틈으로 마귀는 비집고 들어와 관계를 해치고 악을 생산해 내기 때문입니다. 셋째, 마귀는 내 삶은‘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불어넣는 것으로 악을 생산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무엇인지 체크하려면 먼저, 우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적인 생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 확장을 위해서 물질을 흘려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왕국을 확장하려는 사람은 그곳을 향해서 물질을 흘려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 때때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 된 목적은 사랑 받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음 성가 중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가 아주 교묘하게 우리 성도들의 목적 의식을 약화 시켜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단순히 그분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라면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악을 생산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방종'입니다. 구원받은 사실에 안주한 나머지 방종해도 된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 없습니다. 만일 그래도 된다 라고 여전히 주장한다면, 성경은 오히려 바리새인들이 더 의롭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잊혀진 제자도>를 저술한 댈러스 윌라드 목사님은 ‘뱀파이어 크리스천’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뱀파이어 크리스천이란, 우리 구원을 위해 필요한 그리스도의 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하며 제자가 되어, 합당한 삶을 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크리스천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댈러스 윌라드 목사님은 뱀파이어 크리스천이 되는 것을 경계하기 해서는 먼저 노력이 은혜의 반대도 아니고, 순종을 면제 받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철저히 그분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사 43:1)에, “내가 너를 구속하고 내가 너를 네 이름으로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니라.” 오직, 우리가 창조 된 것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 되었습니다. (사43:7) 곧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라.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느니라. (고전2:7)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스도인은 성숙할수록 책임도 커지는 법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우리는 먼저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쳐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에서든 감정을 말씀보다 앞세우지 말고 말씀으로 우리의 이성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방종이라는 먼지를 날마다 털어내는 훈련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악에서 건짐 받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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