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말씀/목회칼럼

지식의 저주와 승자의 저주 -마태복음 23장-

새우물침례교회 2023. 8. 10. 22:30

지식의 저주와 승자의 저주 -마태복음 23장-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는 생각에 타인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행동을 '지식의 저주'라고 하며,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놓고도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를 '승자의 저주'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이같은 저주에 놓은 무리들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성경은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와 같은 존재라고 예수님의 판단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모세오경을 토대로 십계명을 613가지로 열거 하였고, 그것들을 완벽하게 지키고 있노라 생각하며 우월감에 도취되었던 자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예수님의 평가는 ‘화가 있을 지어다’(8번 반복), '독사의 세대들아', '회칠한 무덤아', '버림받은 자들아’라는 저주의 말들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선자'라고 명명하셨습니다. 
 
  그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말만 하고 행함이 없습니다(3-4절). 둘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움직이며, 성구함의 폭을 넓게 하며, 자기들의 옷단을 큼직하게 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5절), 셋째, 잔치의 맨 윗자리와 회당의 으뜸가는 자리와 선생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합니다(6-10절). 넷째,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길게 기도합니다(14절). 다섯째, 개종자를 만들려고 합니다(15절). 여섯째 , 맹세하는 것을 좋아합니다(16-22절).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그들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기 위해서 자신들의 양심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자리와 강단에 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선생이 되길 자처합니다. 또한, 약자들을 집어 삼키고 미사어구를 사용하여 화려하고 길게 기도함으로써 인정받길 원하며, 자신들과 같은 자들의 수를 늘리기 위하여 회당(교회)과 제사장(목사)에게 맹세하도록 강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 여섯 가지 특징을 듣긴 들어도 자신에게 적용치 않고 타인을 떠올리며 지적하고 판단할 내용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 말씀, 성령이 아니라(요일5:7), ‘하나님', ‘회당(교회)', ‘제사장(목사)’입니다. 그들은 회당(교회)과 제사장(목사)에게(보이는 것) 잘 하는 것이 곧 믿음의 열매이자 증거라며 그것으로 인정받길 원함과 동시에, 이같은 교황주의 교리를 형제들에게 맹세 하라고 강요합니다. 거의 개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시하고, 회당에서 쫓겨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같은 일은 비일비재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에게 나지 않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요일2:16).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마23:23)말씀을 통하여 율법의 기능에 대한 그릇된 적용을 지적 하시며 해법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율법의 기능은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그 거울은 하나님의 거룩 하심에 따라, '모든 사람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하는 사실과 함께 높아졌던 자신의 자고한 마음을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가 하나님과 형제자매를 긍휼한 마음으로 섬기도록 촉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율법보다 중한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린 채 타인과 비교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정죄하는데 활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존경하던 모세는 율법을 정죄하는데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4장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격노케 한 이스라엘 백성을 역병으로 모두 진멸 하고 모세로 부터 다시 강한 민족을 세우겠다는 심판의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그것을 들은 모세는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그렇게 하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민족들이 주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능력이 없으므로 그들을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민14:15-16) 라고 변호합니다. 
 
  율법은 모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당연히 판사의 역할을 담당하신 하나님 편에서 검사의 역할을 수행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변호사를 자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부분을 공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막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하여 율법의 목적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며, 하나님의 판단의 공의와 긍휼 하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비교는 당하면 비참해지는 것이고, 가하면 교만해지는 법입니다. 위선자들은 율법이라는 신성한 도구를 통하여 교만을 선택했고, 형제를 비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들 자신도 미리 저주를 확정받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아니하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허락하지 아니하는도다.”(13절) 
 
  논어(論語)에 “학이불사 즉망, 사이불학 즉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사리가 어두워지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라는 의미입니다. 위선자들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볼 수 없는 지식의 저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 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는데 말씀을 알고 나를 알아야만 마귀와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로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위선자들은 말씀을 지식으로 소유하고 있다가 정작 자신은 놓치고 마는 승자의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에 있어서 위선(僞善)은 위태로움을 자처할 뿐입니다.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면 매일같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움직여야 합니다. 거지가 되는 비결은 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경의 지식을 배우고 알았지만 행하지 않으면 영적 거지라 하는 위선자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약2:17)은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라고 경고 하고 있습니다. 
 
  둘째, ‘중용(中庸)’의 미학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23:23)에 이것도 저것도 놓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라고 합니다. 어느 철학자는 중용을 직접적인 화법으로 ‘잘 먹고 잘 싸는 것’이라 표현을 했는데, 균형에 관한한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식을 먹었으면 소화를 잘 시켜 시원하게 배변을 해야 비로소 잘 먹은 것이라 할 수 있듯이, 말씀도 먹었으면 그에 걸맞는 행위가 나와주어야 잘 먹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완전한 말씀을 가졌다 하더라도 기성교인들 보다도 못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 죄에 해당하는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행위가 그들 보다도 바르지 못하면서 말로만 그들의 잘못된 교리를 지적하면 그 행위야말로 위선자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기성교회를 '일반교회'라고 명명하며, 마치 자신들은 '특별교회'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 또한 위선자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전술한 바와 같이, 비교하면 비참해지거나 교만 해질 뿐입니다. 비교는 오직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절대평가이지,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그것이 율법의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말씀이라는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끝마침이 되어주신 그리스도를 마음 깊이 상고하여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2-4)

 

 

새우물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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