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죄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말라! (잠 1:10)
(잠 1:10)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꾈지라도 너는 동의하지 말라."
오래전에 저를 아껴주시던 50대 지인분이 저에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자네는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좀 배워야 해! 세상은 눈치껏 뒷 거래도 하고, 적당히 속일 줄도 알고, 적당히 유흥도 즐기고, 필요에 따라 줄도 옮겨 탈 줄 알아야해! 그것이 세상을 잘 사는 비결이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기준에선 제가 많이 답답해 보이셨나 봅니다.
그분의 말을 듣고 난 뒤에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내가 너무 교회 중심으로 살다 보니 세상 사는 방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분 말씀처럼 ‘적당히’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진짜로 잘 사는 비결이 아닐까? 그동안 내가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들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여태 배워온 신앙의 가치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신앙의 가치관이 정면으로 충돌했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저분의 아들이(당시 초등학교 5학년) "아빠! 세상에서 성공하는 비결이 뭐에요?"라고 질문을 한다면, 저분은 과연 아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자기 아들한테도 조금 전에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아들아, 세상은 말이다 눈치껏 뒷거래도 하고, 적당히 속이기도 하고, 적당히 술과 여자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적당히 배신도 할 줄 알아야 한단다. 그것이 세상 잘 사는 비결이야. 어때! 아빠 최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냥 고민이 해결되었습니다. 잠언 기자는 “내 아들아”라며 글을 써내려 갑니다. 아무리 모자란 아버지라도 아들에게 저렇게 조언할 아버지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자녀들에게 훈계할 때 지혜와 정의와 판단의 공의와 공평이 무엇인지(잠 1:3) 알려줍니다. 비단,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리 합니다.
세상이 우릴 속이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적당히’ 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토해내신다고 경고하셨습니다(계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계 3:15-16).
어떤 일이 있어도 적당히 믿으라는 말에 현혹되거나 동의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철학입니다. 성경은 결코 적당한 거룩, 적당한 믿음, 적당한 희생, 적당한 사랑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 예수님이 우릴 적당히 사랑하셨더라면 십자가 사건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적의 방법으로 성공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 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된 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성공은 세상적인 성공과는 다릅니다. 그것부터 인정해야 죄인들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잠 1:10) "내 아들아, 죄인들이 너를 꾈지라도 너는 동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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