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십일조, 일천번제)
1. '십일조'에 대한 올바른 이해!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들은 십일조에 대하여 성도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적인 헌금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더 나아가 어느 교단에서는 십일조를 하지 않은면 이단으로 분류를 하거나, 집사나 장로와 같은 직분도 담당할 수 없도록 제도화 시키고 있는 형국이어서 헌금에 대한 오해가 날로 깊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헌금 또는 십일조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을 설파하는 데에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교리적 오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제도적으로 의무화 시킨 배경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신정국가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레위자손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성막에서 섬기는 일만 하도록 규정하였니다(민 18:19, 24). 그렇다면, 누군가 그들을 먹여 살려야 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11지파가 자신들의 소유 '10분의 1'을 각출하도록 제도(레 27:30)를 세우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민 18:21). 다시말해서 십일조는 성막을 섬기도록 한 레위자손을 위한 헌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하신 그들만의 '시민법'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부여된 의무적인 제도라고 할 수 없으며, 성경어디에도 이방인들이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근거 구절 또한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십일조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새상속언약(New Testament:신약)이 주어지면서 제사장 직분이 사라지게 되었고, 동시에 의무적인 십일조 또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헌금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오늘날 율법주의적 십일조는 사라졌지만 십일조 정신은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지지하는 맥락입니다. 성도들의 수입의 십분의 일 정도는 되야 목회자와 그의 가정 그리고 섬기고 있는 교회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형편이 어려우면 적게 낼 수도 있고, 형편이 좋으면 그 이상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헌금은 인색하거나 아까운 마음으로 하지 말고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할 것을 성경은 지지하고 있습니다. (고후 9:6)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고후 9:7)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개역: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암4:4) 그뿐만 아니라,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된 다른 유의 십일조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십일조를 포함해서 총 세 가지나 된다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신정국가 백성으로서의 십일조(레27:30-32), 둘째,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기 가족과 레위인을 위한 소출의 십일조(신12:17-19, 22-29; 14:22-27), 셋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삼년마다 드리는 십일조(신14:28-29) 입니다. 이렇게 내면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23.3%의 십일조를 드렸던 셈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닐뿐만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경은 율법적인 십일조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모스 4장 4절의 가록처럼 3일마다 드리는 십일조도 없습니다. 이것은 번역 상의 오류입니다. 킹제임스 흠정역은 삼 년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흠정역: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법을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암4:4) 이처럼 성경은 한 글자만 달라도 교리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단어들을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이 보존하신다고 약속하셨고(시 12:8) 충분히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참조 : - '헌금의 원리' 설교 : https://youtu.be/WY7u-5S5grU 2. '일천번제'는 천일동안 작정하며 드리는 헌금인가? 한국 교회에는 약 60종류가 넘는 헌금봉투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매일 일정한 액수를 정하고 천번을 바치는 헌금을 일천번제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이러한 헌금을 권하는 것은 열왕기상 3장 4절, 13절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 지혜와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는 내용에 기인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일이 성경에 근거한 것 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솔로몬은 결코 천일 동안 번제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잘못된 번역에서 비롯된 오해이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샤머니즘적 종교의식을 추종하는 한국교회의 폐단에서 비롯된 무지의 산물입니다. 과연,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매일 같이 힘들게 천 번씩이나 헌금을 바쳐야만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인지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해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 즉, 인간과 거래하는 하나님은 성경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거래 하려는 행위는 그것이 무엇이든 악한 행위입니다(성경은 가인의 제사를 통하여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아무리 일천 번 예물을 드려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스스로 뿌듯해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곳에는 저주만 있을 뿐입니다. 일천번제가 맞는지 일천개의 헌물이 맞는지는 아래 개역성경과 킹제임스흠정역 성경을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개역: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더니(왕상3:4) 흠정역: 왕이 기브온에서 희생물을 드리려고 거기로 갔으니 이는 그것이 큰 산당이었기 때문이더라. 솔로몬이 그 제단 위에 번제 헌물 천 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리니라. 솔로몬은 천일동안 번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천 개의 헌물을 드린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의 기복주의는 탐욕에서 비롯된 우상 숭배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조 : 정동수, <개역성경분석>, 인천 : 그리스도 예수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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