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묵상 9.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잠 3:6)
(잠 3:6)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 학창시절에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부모님과 교회를 떠나 처음으로 타지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그 생활은 그야말로 황홀했습니다. 밤늦게 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당구치고 게임을 해도 누구도 참견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내 세상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오래가질 못했습니다. 특히, 술 마시며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마음 한켠에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마다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세상 재미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방탕한 생활이 길어질수록 모든 일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실 때 “하나님 죄송합니다. 적게 마실 테니 이해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감히..,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에 참여케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시간부로 또 다른 양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 양심은 부패된 옛 사람의 습성을 고발합니다. 성경은 그 양심의 주체를 새 사람이라고 말합니다(엡 2:15, 4:24; 골 3:10). 새 사람은 죄에 익숙했던 행동들로부터 죄책감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가서는 성도가 가야 할 길과 불신자가 가야 할 길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빨리 항복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자기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소유하려고 했지만 어려운 일들을 다 겪고 난 뒤에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주시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을 때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환도 뼈가 위골되는 고통을 겪으면서까지도 하나님을 붙든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믿음있다고 말하면서 중요한 순간에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영적인 허세입니다. 참된 성도는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합니다. 그분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뤄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하나님의 섭리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삶속에서 생기는 아주 사소한 우연들까지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는 아직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말씀이 어떤 원리로 우리 삶에 적용되는지 바르게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박적으로 믿길 원치 않습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해석은 위험한 행동입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자 하는 교만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연합하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비전이며,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주님과 연합하면 주님은 틀림없이 자신의 비전을 우리와 공유하시며, 우리의 행로를 지도하실 것입니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십시오. 그일은 주님께 감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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