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울>... 핍박의 시대를 넘는 진정한 기적
기독교 영화조차도 왜곡되고 변질되는 요즘... 별로 기대하지 않고, 또 하나 나왔겠거니 하며 약간은 삐딱한 마음으로 본 영화가 <바울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다.
하지만 로마에서 영어 대사를 쓰는 것이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예수님 역할인 짐 카비젤이 누가 역을 맡은 점, 그리고 교회(church)를 회중(community)으로 부르는 점 등 사소한 아쉬움 외에는 무척 좋은 영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였다. 대사에 현대역본 성경을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중세 때의 영어인 킹제임스 성경을 바라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1 이 영화는 예수님 승천 이후인 AD 67년, 네로 황제 치하의 로마에서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이유 없이 맞아 죽거나 거리에서 산 채로 화형 당해 가로등이 되고,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는 등 가장 극심한 박해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은신처에 숨어서 교회 공동체를 꾸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굳건히 로마를 지키며 사람들의 버팀목이 돼준다. 가장 위험한 지역이지만 가장 손길이 절실한 곳이라서 그들은 남아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찾아온 누가(가운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는 이들을 도우면서 지체 높은 그리스인 동족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드나든다. 그 감옥에는 로마 시내의 대형 화재 방화범으로 몰린 사도 바울이 있다. 그가 누명을 썼고 실제 방화는 네로가 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아무튼 그는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누가는 그의 감방에 숨어들어 바울의 서신을 적어오는 일을 한다. 자신도 교도소 감독인 모리셔스에게 잡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스토리를 다 말하는 것은 매너가 아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다소 사람 사울, 그리스도인들을 뒤쫓아 다니며 죽이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환영 때문에 고통받는 늙은 사도에 불과하다. 미약한 힘으로 고난당하는 이가 바울뿐인가? 누가는 열두 사도로 오해들을 많이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 보지도 못한 사람이었고, 브리스길라 부부는 자신들이 거둔 사람들도 다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연약하다. 이들에게는 기적이 없다. 바울은 신통한 도술을 부리던 자로 로마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했지만 간수들이나 모리셔스가 보는 바울은 무기력한 늙은 죄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압수했던 바울의 말이 담긴 누가의 기록도 의미 없는 말들이라며 돌려줄 정도다. 누가가 가지고 나온 바울 서신은 필사되어 곳곳으로 퍼졌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들에게는 기적이 없었지만 소망과 기도가 있었다. 누가는 내일 사자밥이 될 성도들에게 솔직하게 일정을 들려준다. 그가 그들을 빼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누가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고통의 순간은 잠깐일 것이라며 용기를 주고 성도들과 기도한다. 그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선 날, 바울과 누가는 천국에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을 거라며 소망을 갖는다. 한편 자기 딸이 병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는데도 모리셔스는 이방 신들에게 헌물을 바치며 오랫동안 제사를 지낸다. 차도가 없자 소문으로 들은 바울의 신통력에 기대를 하지만 바울은 누가의 의술을 추천한다. 버티던 그는 딸이 정말로 위독해지자 누가의 손길을 빌린다. 누가 역시 의술밖엔 없었다. 누가는 은신처가 드러나는데도 적의 딸을 살리기 위해 그에게 시술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도록 은신처의 위치를 공개한다. 그리고 누가가 시술을 하는 동안 교회 공동체는 합심하여 기도하고, 바울도 감옥에서 간절히 기도한다. 2 그 시대는 이미 바울도 이적을 행할 수 없는 때가 되어 성도들의 죽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특수효과가 없다. 하지만 참다운 기적이 무엇인지 힘있게 말해준다. 진짜 기적은 죽음을 무릅쓰고 로마에 위로가 되려 했던 여장부 브리스길라의 용기이며, 대가와 뒷일을 바라지 않고 불신자이자 핍박자의 딸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누가의 사랑이다. 또한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사람들을 격려한다. 그는 누가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들려주며 종종 말했다. "그럼 적어 두게." 그렇게 바울은 로마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위로를 남겼다.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롬 1:7) 옥중의 바울과 누가
명대사가 많지만, 바울이 모리셔스에게 들려준 바닷물의 비유는 인상적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바닷물을 손에 퍼올리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것이 당신들의 생명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산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저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같다."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것을 소유한 자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목숨을 구걸할 이유가 없는 법이다. 바울과 교도소 감독 모리셔스
3 핍박은 계속되고, 네로의 강퍅함도 지속된다. 딸을 살린 아버지도 이방신을 떠나 생명의 길로 나아오지 않을 수 있다. 바울의 사형도 그대로 집행된다. 하지만 믿음은 지속된다. 표적과 기적에 의지하는 신앙은 그것의 소멸과 함께 사그라진다. 바울의 기적에 기댔던 이들은 그가 힘없는 노인이 되자 절망했을지 모른다. 능력과 이적을 보이시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어갈 때 많은 이들이 등을 돌린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끝까지 기적을 말하지 않고, 놀라운 반전도 없다. 하지만 박해하는 자들과 고난에 처한 성도들을 대비시키며 과연 누가 승리한 자이고, 누가 비참한 인생인지 대비시킨다. 이제 바울이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순순히 목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는 머지않아 자기를 기다리던, 자신이 핍박했던 스데반과 성도들의 환영을 받는다. 늘 자신의 양심을 찌르던 죄 없는 성도들.... 그들은 바울 같은 핍박자들에게 목숨을 잃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대신 용서를 구하며 죽어간 사람들이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의 귀를 막고 한 마음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도시 밖으로 그를 내던지며 돌로 치니라. 또 증인들이 자기들의 옷을 사울이라 하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이르되, 주 예수님이여,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옵소서, 하더라. 이 말을 하고 그가 잠드니라. (행 7:57~60)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인데 두 팔로 환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바울의 표정은 신비와 감격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가 눈을 돌리자 저 멀리 언덕에서 한 사람이 걸어온다. 늙은 사도의 얼굴에 어리는 아득한 미소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애타게 그리던 그 한 사람... 영화 <바울>은 바로 그분 때문에 핍박받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소망의 이야기다. 김재욱 작가 https://woogy68.blog.me/221427945778?Redirect=Log&from=post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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