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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혼'을 구하는 것인가, '영혼'을 구하는 것인가?

새우물침례교회 2023. 8. 20. 23:15

복음은 '혼'을 구하는 것인가, '영혼'을 구하는 것인가?

Q. 왜 '영혼'이라는 말을 두고 '혼'이라고 표현하나요? '혼'을 사랑한다, '혼'을 구한다 등의 표현을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영'과 '혼'은 다릅니다. '영혼'은 이 둘을 함께 이르는 말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 말입니다.
  
 
1. '혼'은 정상적이고 중요한 단어
 
흠정역을 사용하지 않는 분이 보내온 질문입니다. 이분처럼 혼(soul)이라는 성경 단어에 낯설어하는 분들이 있고, 영(spirit)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 교회의 표준(?)처럼 되어버린 개역성경을 보면 '혼'이라는 말이 몇 번 안 나오기 때문에 '혼'이 성경 단어라는 말 자체가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개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잘못된 교과서를 보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박 전 대통령이 무속인이자 사이비 교주와 오랜 세월 깊은 인연이었던 것으로 밝혀지자 사람들은 이 '혼'이라는 말을 무속적이고 특이한 용어로 이해하기도 했지요. 
 
박 전 대통령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을 수 있지만 '혼(魂)'이라는 말은 우리도 자주 쓰는 말입니다. 
'혼나다'라는 말은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놀라는 일을 말합니다. '혼쯜나다'의 '혼쭐'은 '혼'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전라도 지방에서 쓰이는 '혼불'이라는 말은 사람이 죽기 전에 빠져나가는, 도깨비불같은 불이라고 합니다. '혼비백산'이라는 말은 넋이 흩어지고 날아간다는 뜻이지요.
 
한때 서울시는 Seoul의 발음을 이용해 소울 오브 아시아(Soul of Asia)라는 슬로건을 썼습니다. '겨레의 얼'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얼이 곧 혼이고, '얼'이 담긴 '굴'이 '얼굴'입니다. 그래서 '얼빠진'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죠. '넋 나간', '넋 놓고', '넋두리' 등에 사용하는 '넋'이라는 말도 같은 것입니다.
 
'혼'은 영어로 소울(soul, 표준 표기법은 '솔')인데, 킹제임스 성경에 500회 정도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현대역본인 NIV로 보면 130여 회로 줄어들고, 개역성경으로 보면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 버리죠.
 
여러분은 소울(soul)이라는 단어가 있고 스피릿(spirit)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각각 어떻게 번역하시겠습니까? soul은 '혼'으로, spirit은 '영' 또는 '영혼'으로 번역하겠죠. spirit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있는데 soul을 영으로, 혹은 영혼으로 번역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번역자들은 왜 자신들 마음대로 soul, 즉 혼을 영혼으로 바꿔버린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인 것은 분명합니다. 혼과 영이 무엇이 다르냐... 같은 것인데 표현상 다르거나 보는 각도와 표현법에 따라 다른 게 아니냐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이 사고법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번역했을 것입니다.
독자들의 이해 수준을 배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괜히 혼란만 주지 말고 통합하자 했을까요... 하지만 시험문제에 이렇게 답을 쓰면 틀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왜 이렇게 마구 재단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혼이란 우리에게 그리 생소한 개념이 아닙니다. 음악 장르 중에도 '소울 뮤직'이 있습니다. 장르와 무관하게 무언가 깊이가 있거나 혼신의 노력이 느껴지면 '소울'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혼을 담은 음악이라는 것이죠.
음악을 넘어 마음 깊이 교감하는 친구나 동료를 소울메이트(soul mat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 혼인가, 영혼인가?
 
물론 개역성경이 혼을 매번 없앤 것은 아닙니다. 아나니야가 죽는 장면은 혼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행 5:5, 개역).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는 영혼이 떠났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마 27:50, 개역).
 
왜 이런 번역이 나왔을까요? 아나니야는 혼만 떠나고, 예수님은 영과 혼이 다 떠났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영어 현대역본들은, 아나니야는 그냥 죽었다거나 숨이 떠났다 했고, 예수님은 영(spirit)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흠정역은 두 경우 모두 '숨을 거두었다'고 번역했습니다. 
 
죽으면 혼이 떠나는 것일까요, 혼이 떠나면 죽는 것일까요?
 
그녀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이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더라.) (창 35:18 상반, 흠정역)
 
이 구절에 의하면 죽는 일, 즉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하면 그 뒤에 혼이 떠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숨을 거두었다, 죽었다, 이런 표현은 혼이 떠나기 전 단계까지만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영혼'이라는 단어도 사실은 '영과 혼'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 둘은 다른 것이고, spiritsoul이라는 말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영과 혼을 같은 것으로 분류합니다. 이것을 '2분설'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영혼 + 육'의 두 요소로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영 + 혼 + 육'으로 구분하는 것은 3분설이라고 하는데, 국내에는 2분설을 선택하는 신학자가 월등히 많다고 합니다. 아마도 세계 유일의 성경 역본 통일 국가라서 그렇겠지요.
 


[그림1] 국내에는 혼과 영혼을 분리하지 않는 학자가 훨씬 많은데, 이는 개역성경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라면 무슨 무슨 설이나 이론을 만들고 선택할 수 있겠지만, 답이 있는 것을 가지고 사람 마음대로 선택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3분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개역성경에서도 3분설을 가리키는 구절이 분명히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육)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개역)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육)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개역)
 
문제는 이렇게 명백한 구절을 빼고는 모두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개역성경은 '혼'이라는 단어를, 영적인 일에는 '영혼'으로, 기타 부분에서는 목숨, 마음, 생각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물론 혼은 목숨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설교에 삼천 명이 회개했다고 할 때 분명히 소울, 즉 혼으로 번역해야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지옥에 갈 존재가 천국으로 행선지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은 영이나 땅에서의 육신이 아닌 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자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행 2:41)
 
성경에서도 사람을 셀 때 '00명(名)'이라고 쓰지만 이처럼 특별히 목숨을 표현할 때는 일흔 명, 삼천 명이 아닌 '일흔 혼, 삼천 혼'이라고 구분해서 썼습니다. 혼은 사람 자체이며 목숨이자 존재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요셉이 이집트에 있었으므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모든 혼이 일흔 혼이더라 (출 1:5)
 
그 배에 있던 우리는 전부 이백칠십육 혼이더라. (행 27:37)
 
그래서 전도(傳道)는 영어로 소울 위닝(soul winning), 혼을 얻는 일입니다. 
 
아담은 산 영(生靈, living spirit?)이 아니라 생혼(生魂), 즉 living soul로 창조된 것입니다. 영은 죽지 않기 때문에 살려줄 수가 없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개역)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a quickening spirit)이 되셨느니라. (고전 15:45, 흠정역) 
 
첫 사람 아담을 살아 있는 '영(spirit)'으로 번역한 성경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3. 영 혼 육, 각각 어디로 가나?
 
개역성경이 영, 혼, 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자의적으로 번역한 증거는 더 있습니다.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 3:21, 개역)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 하니 죽으면 다 하늘나라 어디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짐승은 다 땅으로 내려가는 혼을 지닌 것 같이 보입니다. 사람의 혼이 나오는데 차원 낮은 짐승에게 영이 있다고 하기는 좀 찜찜했는지, 짐승도 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주석에는 '원문에는 영'이라고 달아놓기도 했지요. 왜 원문을 무시했을까요...
 
여기 혼은 둘 다 영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누가 알리요? (전 3:21, 킹흠정)
 
짐승에게도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영물(靈物)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동물은 몸으로 감각을 느끼고 영으로 지각을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거나 구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동물은 위협이 없으면 타고난 악함이나 계획된 악행이나 죄악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저 본능으로 생존을 위해 먹이를 탐하거나 번식을 위해 다툴 뿐입니다. 그조차 노아 홍수 이전에는 채식만 했습니다. 
 
사람의 영은 모두 하나님께 올라가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가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리가 갈 천년왕국에는 짐승이 있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짐승이 없습니다. 
 


[그림2] 사람의 모든 영은 하나님께로, 혼은 천국(낙원)과 지옥으로 간다. 부자와 나사로의 지옥과 낙원은 모두 땅속이었지만 예수님 승천 이후로는 낙원을 셋째 하늘로 옮기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엡 4:8)." 사도 바울도 어떤 이가 셋째 하늘(삼층천)에 다녀온 것을 말하며 낙원이라고 표현했다(고후 12:4).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람이 천국에 간다, 지옥에 간다 할 때는 모두 혼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혼에는 새롭게 변화된 다른 차원의 몸이 있습니다. 혼은 형체가 없으므로 몸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옥에서 몸과 혼을 멸하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마 10:28)
 
계시록에 나오는 7년 환난기에도 짐승을 거부하고 목이 베인 자들은 혼으로 존재합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계 20:4, 중반)
 
흔히 '영육구원'이라는 말도 있어서 전화번호를 0691으로 사용하는 교회나 개인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영과 육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혼을 구하는 것입니다. '영육' 구원이라지만 육신의 장막은 아무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혼의 구원을 받으면 휴거 때 홀연히 변화되거나 죽음 뒤에 영화로운 몸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구원받지 못해도 영원한 형벌을 위한 몸이 준비됩니다. 지옥에 간 부자는 서늘하게 되기를 원하는 혀가 있었고, 낙원에 간 나사로는 손가락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눅 16:24)
 
그러므로 사무엘상 28장에서 흔히 엔돌의 무당이라고 하는,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이 땅속에서 사무엘을 끌어올리는 장면은 속임수가 아닙니다. 기존 성경사전 등에서는 한 번 죽은 사람의 혼이 육신을 지니고 다시 나타날 수 없으므로 그것은 악한 영이라고 했지만 사무엘이 맞습니다. 그는 새로운 몸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낙원의 아브라함도 부자가 나사로를 지상의 형제들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때, 땅으로 다시 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고, 가 봤자 설득되지 않을 것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눅 16:31).
 
 
 
4. 인간의 구조
 
인간은 삼중적 존재입니다. 삼위일체의 개념은 아니지만 세 요소가 모두 있어야 인간입니다. 혼은 마음, 생각, 의지, 정신, 의식 등으로 번역할 수 있듯이 누군가의 속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위치를 표시한다면 몸의 안쪽이 혼이며, 혼의 안쪽이 영입니다. 
 


[그림3] 혼은 존재 자체이며 인간의 의식이다. 혼은 영을 가까이할 수도 있고, 육을 더 가까이할 수도 있다.
 
 
혼은 육신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영을 통해 하나님을 접합니다. 육적인 사람이 되면 세상 쾌락을 지향하고, 영적인 사람이 되면 거룩한 기쁨을 따라 사는 것이지요.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내가 간청하노니 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 (벧전 2:11)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6)
 
그래서 영의 세계를 모르는 불신자는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형제라도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갓난아이와 같고, 육에 속한 자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고전 3:1) 
 
예수님은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준비되어 있으나 육이 약하도다, 하시니라. (막 14:38) 
 
흔히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다'로 알려진 구절이지만 흠정역의 번역은 매우 탁월합니다. 영은 구원받아 준비가 끝났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이 제자들의 상태, 그리고 우리의 상태 아닙니까? '마음은 원이로되'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서 원치 않을 때도 많지 않습니까? 몸도 문제지만 결국은 우리 마음, 즉 혼이 육에 이끌려서 게으르고 나태한 것 아닌가요?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오직 영이 준비돼 있을 뿐입니다.
 
 
***
 
영혼육을 바르게 알고 구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 돌아가지만 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혼이란 여러분이 지금 느끼는 존재의 중심, 모든 세상을 자각하고 몸에 난 작은 상처도 생생하게 체감하는 바로 그 정신이 육신에 유폐된 지금보다 훨씬 민감하고 총기 있는 멀쩡한 상태로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즐겁고 괴로운 마음 상태가 아니라 직접적인 장소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대강 떠돌다가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라고 만들어진 겁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혼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하고 바르게 분리하면 모든 순간에 좀 더 실제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육에 굴복할 것인가, 영에 속한 하나님의 사람답게 행동할 것인가...
 
신앙생활은 고도의 정신훈련이나 신비한 영적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활입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성경이 말씀하는 진실을 알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혼'이 빠진 성경은 그야말로 '소울이 없는' 성경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소울이 없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혼을 깨워야 합니다. '혼'을 구하는 것이고, '혼'이 우리에게 더해지는 것입니다. 바른 성경으로 그 일은 더욱 힘을 얻을 것입니다.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접붙여진 말씀 곧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21)
 
 
 
김재욱_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