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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逃避城)은 왜 도피 도시(逃避 都市)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새우물침례교회 2023. 8. 20. 23:21

도피성(逃避城)은 왜 도피 도시(逃避 都市)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도피성(逃避城)은
왜 도피 도시(逃避 都市)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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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성경에는 도피성(逃避城, city of refuge)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는 어릴 때 이 단어를 듣고,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가는 성(castle)이 있는 줄 알았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자로도 도피성의 '성'은 그냥 성(城)이고, 도시를 뜻하는 성읍(城邑, city)도 한자가 성(城)이다. 요즘 '롯데캐슬'이니 하는 브랜드가 많은데, 그 castle도 성(城)이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구경을 하는데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별 별것 보았네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다
 
학창시절에 우리나라 노래인 줄 알았던 <냉면>이라는 노래의 시작 1절이다. 그때 숭실 합창단의 <비브라 콤파니>(vive la compagnie)라는 노래를 자주 들었는데도 <냉면>이 그 곡의 번안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노래는 '친구여, 축배를'이라고 번역되는데, 너무나 토속적인 주제와 가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냉면>의 가사에는 성내(城內), 즉 성의 안쪽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어릴 때 이 노래의 가사를 떠올리면, 어떤 사람이 성벽 안쪽에 있는 공간에 들어와 무언가 구경하는 것이 연상되었다. 그 연상되는 크기는 매우 한정돼 있었다.
그래서 '시온성'이라고 할 때도 영주나 왕이 머무는 성을 떠올렸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아버지 집이라 하니 더더욱 그곳은 공주가 갇혀 있는 마법의 성 같은 곳으로 그려졌고, 그 성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들어가도 아주 소수일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도피성이나 시온성의 '성'은 산성(山城)이나 고성(古城) 같은 게 아니라 도시(city, 都市)이다. 도시는 작을 수도 있지만 엄청나게 클 수도 있고, 아무리 작아도 도시라고 했을 때 다가오는 느낌은 성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고대의 도시는 성벽이 있고 성이 있는 그런 도시가 맞는다. 단어의 정확성을 말하는 것이다.
 
도피 도시(도피성)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도망해 보호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너희가 레위 사람들에게 줄 도시들 가운데서 여섯 도시는 사람을 죽인 자를 위해 도피 도시로 지정하여 그가 거기로 도피하게 할 것이요, 또 너희는 그 도시들 외에 마흔두 개의 도시를 더할지니라. (민 35:6)
 
너희를 위해 도시들을 도피 도시로 지정하여 알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거기로 도피하게 할지니라. (민 35:11)
 
너희를 위해 그 도시들이 복수하는 자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도피 도시가 될지니 이것은 사람을 죽인 자가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을 때까지 죽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민 35:12)
 
이런 도시들은 이스라엘 전역에 6개가 있었는데, 요르단 강을 기점으로 동서 각각 3개씩이다.
 


이스라엘에 지정되었던 6개의 도피 도시(도피성) 지도. 가데스, 골란, 라못, 세겜, 베셀, 헤브론
 
 
이 도시들은 48개의 레위인 거주 지역이었는데, 한 지역당 크기는 각기 달라도 그 주변을 둘러싼 들판은 그들이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를 수 있도록 동서남북으로 2천 큐빗(규빗), 즉 (1큐빗이 성인 남자의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이므로 45~50cm로 계산해) 사방 약 1km 정도 되는 땅이었다.
 
2
 
그런데 민수기 35장 4절과 5절이 약간의 혼동을 준다. 거주 지역은 각기 다르고 그 주변 들판만을 뜻하는 것인가? 수치가 잘못 기록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물론 그럴 리 없다.
 
너희가 레위 사람들에게 줄 도시들의 주변 지역은 도시의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방 천 큐빗이 되리라. (민 35:4)
 
너희는 도시를 한가운데 두고 도시의 밖에서부터 동쪽 편으로 이천 큐빗, 남쪽 편으로 이천 큐빗, 서쪽 편으로 이천 큐빗, 북쪽 편으로 이천 큐빗을 측량할지니 이것이 그들을 위하여 도시들의 주변 지역이 될 것이니라. (민 35:5)
 
4절의 1천 큐빗은 무엇이고, 5절의 2천 큐빗은 무엇인가?
 
우선 4절은 주변 지역 들과 초장을 가리킨다. 그리고 5절은 전체 지역을 가리킨다. '도시를 한가운데 두고'라는 것은 전체 지역의 중심부를 기준으로 설정하라는 것 같다. 그러므로 5절에서 지시하는 크기에서 4절에서 말하는 주변 지역을 빼면 사방 1천 큐빗의 공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거주 지역으로 보인다.
 
다음은 레위인의 도시를 계산하는 방법들이다.
 

거주 공간의 폭을 제외하고, 도시 성벽 끝에서부터 1천 큐빗씩, 도시 밖에서부터 양쪽으로 1천 큐빗씩 2천 큐빗의 경작지를 측량한 방법
 
 

성벽에서부터 반대편 성벽 방향으로 2천 큐빗씩 계산한 방법
 
 
 

도시 밖에서부터 안쪽으로 직경을 잰 방법으로 유대인 랍비들이 계산한 것.
 
어느 것을 고르든지 사방 1~1.5km 정도의 땅이니 작은 시골마을 정도가 레위인들의 거주 지역이었을 것이다.
 
도시의 면적도 중요하지만 인구도 도시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조건이다.
레위인은 1개월 넘은 남자가 23,000명이라고 했다(민 26:62). 여자까지 2배수라고 보면 46,000명이 된다. 48개 지역에 균등하게 분포되었다면 한 지역당 960명 정도가 된다. 그러므로 약 1천 명이 사는 동네 48개 중에서 6개가 도피 도시로 지정된 것이다.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도시'를 왕족과 식솔들이 사는 '성'으로 이해했을 경우보다 훨씬 큰 개념이므로 '도피성'이라는 단어는 특히 현대인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도피 도시뿐 아니라 시온 성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때도 그저 한 성이라고 하면 들어가기가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하나님의 도시는 무척 크다. 마지막에 성도들이 갈 곳인 새 예루살렘은 사방 2,240km의 정육면체 또는 피라미드 형태이므로 엄청나게 큰 공간이다. 그리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도시 바깥 지역도 얼마든지 활용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는 그들이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의 본향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흠정역)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개역)
 
어떤가? '성'보다는 '도시'라는 말에서 스케일이 느껴지지 않나. 서울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큰 도시이며 드물게 큰 강이 가로지르는 대형 도시다. 하물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시는 얼마나 더 크겠는가!
 
'성'이나 '성읍'이 오역이라는 말이 아니다. 영어가 city이고, 사람들에게 '성'에 대한 다른 이미지가 있으니 '도시'가 더욱 적절한 번역이라는 뜻이다.
 
3
 
한편 NIV 신국제역은 민수기 35장의 시티(city)를 더 작은 개념의 타운(town)으로 바꿨다. '도시'면 '도시'로 일관되게 번역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의 도시와 하늘의 도시 등 알려주시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인데, 레위인 거주 지역은 town이고, 도피 도시는 city라고 다르게 번역해 버리니 성경이 점점 모호해진다.
 
나름 친절하게 바꿔준 것 같지만 자꾸 뜻이 달라지는 이런 현대역본을 따라가는 개역성경도 레위인 거주 지역은 '성읍'으로, 도피 도시는 '도피성'으로 번역해 '성읍'을 검색하면 '도피성'은 누락된다. 흠정역은 '도시'를 검색했을 때 레위인의 도시와 도피 도시가 함께 나와서 알기가 쉽다. 48개 중에 6개에 추가로 용도를 부여한 것이 도피 도시니까 완벽하게 같은 지역인데 말이다.
 
그런가 하면 NIV는, 계시록 21장에서는 city로 그대로 두면서도 크다(great)라는 표현을 빼 버렸다. 번역본의 계열에 따라 흠정역과 개역성경도 같은 표현이다.
 
영 안에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에 이르러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저 큰 도시 곧 거룩한 예루살렘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 (계 21:10, 흠정역)
 
And he carried me away in the spirit to a great and high mountain, and shewed me that great city, the holy Jerusalem, descending out of heaven from God, (계 21:10, KJB)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 21:10, 개역)
 
And he carried me away in the Spirit to a mountain great and high, and showed me the Holy City, Jerusalem, coming down out of heaven from God. (계 21:10, NIV)
 
'시온성'도 마찬가지로 '도시'이다.
 
시온 산은 아름답게 위치하여 온 땅의 기쁨이 되나니 곧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위대한 왕의 도시로다. (시 48:2, 흠정역)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시 48:2, 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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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모든 단어가 즉시 우리에게 인지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그렇게 만들 필요도 없다. 배우고 이해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이 맞는다. 하지만 성경의 품위와 문법을 어지럽히지 않는 단어라면 최대한 적확(的確)한 표현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시티(city)라는 어렵지 않은 단어를 놓고 굳이 '성'과 '성읍'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성경, 세심한 번역을 보면 눈이 열리고 성경에 대한 안목이 자라날 것이다. 나는 틀림이 없고 빠진 곳이 없는 킹제임스 성경을 따라 하나님의 크고 거룩한 도시를 바라본다. 
 
 
플랜비 제공. 김재욱_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