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을 판별하는 간단한 기준 7가지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세상에는 기독교 이단이 참으로 많다. 우리나라는 특히 이단이 많은 나라인데, 200만 정도로 추정한다지만 정확한 수치는 파악조차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경 번역의 문제를 비롯해 무속적인 토속종교의 문제, 미신적 국민성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우리 민족은 기질상 이스라엘과 비슷한 점도 많은데, 무언가에 휩쓸렸다가 금방 변덕을 부리는 심성이라든지, 표적을 바라는 마음 때문에 과도한 은사주의에 빠지는 특징이라든지, 여러모로 이단이 기생하기 좋은 특징을 지닌 것 같다. 이단 때문에 골치를 앓는 교회들도 많고, 가족 간에 갈등의 골이 깊은 가정도 꽤 있다. 이단이란 교묘한 자들이고 매우 다양하여 쉽게 분별을 못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의 교리나 자세한 정보까지 알 필요 없이, 특징만 알면 상당수 걸러진다. 물론 총체적인 완전 사이비도 있지만 애매한 부분적 이단도 있어서 구분이 어려울 수가 있는데, 다음의 특징들에 많이 걸릴수록 이단성은 짙다고 보면 된다. 이단을 만드는 마귀의 목적에 의거해 그것을 정의한다면, '참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막는 모든 종류의 다른 복음'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런 특성을 지닌다 해도 드물지만 구원이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며, 오류나 오판에 의한 진리 훼손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1. 여기에만 구원이 있음을 주장 가장 대표적이면서 가장 강력한 이단의 무기다. 공포심을 조장해 이곳이 아니면 천국 길에서 낙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이 논리는 명백한 '다른 예수'를 따르는 '다른 복음'에서 나온다. 누구나, 모든 사람이 믿기만 하면 얻는 구원을 어렵게 만들어 특별히 뽑힌 자들만 자격이 있다는 식의 세뇌를 한다.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수용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 (고후 11:3~4) 그런데도 여기 잘 속는 이유는 '좁은 문 좁은 길'의 논리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천국은 모두가 다 와도 충분한 자리가 있지만 그 쉬운 믿음의 길을 택하는 자가 적기 때문에 가는 이가 별로 없고, 결과적으로 좁고 협착한 길로 보이는 거다. 또한 성경을 이용한 교리를 만들기 때문에 한번 속으면 대책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십사만 사천 정원제 같은 것이다. 우리만 옳고 여기에만 구원이 있다는 논리는 설령 그곳이 진짜 바른 것을 전하는 단체라고 해도 잘못된 주장이다. 한 가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이 백 퍼센트라고 믿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그것을 믿는다 해서 여기만 답이 있다고 한다면 문제라는 것이다. 성경은 오히려 백 퍼센트가 아니라고 하는 곳을 주의해야 한다. 2. 배우자가 반대하면 이혼할 것을 종용 이단은 대개 개인을 대상으로 포섭하거나 추종자 개인을 공략한다. 그런 대상이 기혼자이면 상대방은 무교이거나 기존 교회 교인일 확률이 높다. 그러면 당연히 이상한 조직에 가담하려 하고 기존 조직을 비판하는 등의 일 때문에 부부간에 갈등이 일어난다. 물론 반대로 이단에서 나오려고 할 때도 그런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이단은 가정을 깨고라도 우리 조직에 오는(남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이혼을 종용한다. 반대하는 무리는 마귀라는 식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명령을 하지 않으신다. 구약 성도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이며, 신약 성도는 예수님의 신부다. 우리가 영적으로 방황하거나 베드로처럼 시시각각 주님을 배신할 때마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 성도들을 버리셨다면 남아날 자들이 있겠는가. 잘못된 것을 믿어도 이혼을 해서 버리면 안 되거늘, 이단이 조직원을 이혼시켜 자신들에게 귀속시키려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일 것이다. 가정은 교회보다 먼저 세우신 하나님의 기관이다. 불가피한 이혼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조직이 전적인 귀속을 위해 이혼을 종용한다면 이단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3. 세상을 떠난 공동생활을 강요 세상이 너무 타락했다든지, 기존 교회에는 답이 없다든지 하는 이유로 같이 합숙을 하면서 배워야 한다거나, 공동체를 이루어 초대교회처럼 지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주장하는 곳이다. 초대교회는 일시적으로 재림을 기다리며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모든 시대의 교회에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후 바울 서신을 받은 교회들도 이미 그런 형태는 아니었다. 성도는 세상의 빛이 되는 사람들이며 모든 권력에 복종하면서 세금을 내는 사람들, 즉 정상적인 사회인이다. 중세 때처럼 산골짜기에 모여 자급자족하는 무리도 아니고, 문명사회에서 각자의 삶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이는 재산을 다 바치라는 식의 사기를 치기 위한 속임수다. 이런 조직의 리더들은 대개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자기 제자를 만들려는 자들이다. 추종자가 다른 곳에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능가하지도 못하게 하면서 자기 앵무새를 만들려 한다. 이런 자들의 탁월함과 카리스마는 대단하기 때문에 미혹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 4. 특정인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이 나온다고 주장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대언자(선지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상을 향한 경고의 의무가 주어졌고, 그 말을 무시하면 재앙이 닥치며 구원을 잃거나 휴거를 받지 못한다는 식이다. 이런 자들은 신기한 일을 보이기도 하고 예언을 적중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특정인에게 당신의 말씀을 맡기지 않으셨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은 은혜 시대가 아니며, 복음은 굿뉴스가 아니다. 이런 현대의 선지자나 능력의 종을 만나려고 천 리 길은 마다하지 않으면서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은 외면하는 이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예언자의 말을 더 권위 있는 매뉴얼로 삼으며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그 '능력의 종'이라는 자들은 엄청난 영향력을 통해 자의 반 타의 반 스스로 하나님의 권좌에 앉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신약 시대에 구약을 믿어서 생기는 일이다. 신약 성도가 받은 새 상속 언약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전 휘장이 둘로 나뉘었다. 대리자가 필요 없이 직접 나아가는 것이다(히 10:19). 또한 바울은 뜨거운 기도의 효력을 말하면서, 엘리야조차 우리와 동일한 성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신통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약 5:16-18). 신약 시대에는 특정인이 대언자가 되는 일이 없다. 사도 바울조차 그런 역할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왕가의 제사장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얻은 자가 성도인데 누군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고리가 되어 주리라 믿는 것은 신앙적 퇴보이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구약 스타일의 대언자가 재등장하는 것은 7년 환난기이다. 그때는 은혜 시대가 아니며 행위를 보여야 구원을 얻는 때로 하나님의 경륜이 바뀐다. 이때 등장하여 하나님이 권능을 주시는 자들이 7년 환난의 전 3년 반에 활동할 두 증인인데, 지금 시대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구약 스타일의 대언자라 해도, '주가 말하노라'라고 하면서 대언한 말씀이 하나라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는 죽어야 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그 대언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구약식 대언자라면 한 가지도 예언이나 대언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대언자가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자기 뜻대로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혹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대언자는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신 18:20)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신 18:22) 5. 교주나 지도자를 재림 예수나 신으로 주장 이런 부류의 교주는 주로 재림 예수로 주장되는데, 보혜사라고 우기는 곳도 있고, 삼위일체 중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요즘도 이런 것에 속는 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예수님의 초림처럼 재림도 사람을 통해 온다는 것인데 이건 정말 황당무계한 무지의 결과다. 죄가 있는 사람을 통해, 그것도 성경에 예언된 되지 않은 재림 예수가 뭐 하러 세상에 올까...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도 없고 희생 제사도 필요 없는데 왜 왔을까. 그래서 이들은 온갖 교리를 창작하고 경전까지 펴낸다. 그 경전이나 교리서에는 자신들의 교주가 태어난 시기에 맞는 예언이 있고, 정황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기독교에 기반을 둔 사이비 종교이자 신흥종교로 봐야 한다. 기독교 이단을 넘어서는 곳이다. 성도들이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기독교 이단으로 분류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예수님이 경고하신 일이다.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이르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하거나, 보라, 그가 저기 있다, 해도 그를 믿지 말라. (막 13:21) 이와 반대되는 것은 전통적 영지주의와 같은 것으로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영적인 일이고, 상징이라는 가르침이다. 이 역시 진즉에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자가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요이 1:7) 6. 성적으로 타락 이것은 거의 예외가 없다. 목회자가 실수하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추락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주나 특정한 권능을 지닌 자에게 신도들 중 여성이나 미성년자를 육체적으로 제공하거나 성행위를 통해 뭘 해방시킨다든지 특별한 권리를 얻는다고 속인다. 크게는 교주의 피를 전한다는 명분으로 집단 결혼을 시키기도 하고, 교주와 동침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곳도 있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범죄 행위로 기독교 이단뿐 아니라 각종 신흥 거짓 종교에서도 행하는 일이다. 성적인 착취를 위해 종교를 만드는 일도 있겠고, 반대로 모든 영적 권력을 쥐자 욕심이 생긴 것일 수 있다. 다음에 가르치는 목회자의 덕목으로도 물론이지만,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으로도 사악한 범죄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 (딤전 3:2~4) 7. 믿음 이외의 표적을 요구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는 곳이다. 이들의 가르침은 교묘하다. 얼른 분별하기가 어렵고, 때론 무척 건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행위가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든지,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 한다든지, 방언을 해야 한다든지, 병 고침을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기존 교회에서도 이런 것을 가르치는 곳이 있지만 이단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려면 강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요건들이 구원의 기준이라고 못 박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헌금을 어느 정도 해야 한다거나 어떤 의식을 통해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곳도 있다. 또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성령의 법 이외에 아무것에도 속박을 받지 않으며, 심지어 침례와 같은 중대한 규례도 구원에 소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시인하는 통과의례 역할을 할 뿐이다. 무엇이든 다른 구원의 징표를 말하는 자체가 그릇된 집단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롬 8:1~2) 기타 지금껏 살펴본 모든 기준의 공통점은, 기독교적으로는 비성경성이며 일반 상식으로는 비정상성이다. 이런 것은 특정 교단의 이단 사냥꾼들이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바른 판단과 건전한 교리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이단 사냥꾼들은 오히려 위험한 사람들이다. 이단으로 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누군가 돕지 않는데 스스로 깨닫고 벗어나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잘 판단하여 건전한 곳을 택해야 후회가 없다. 사람의 인생은 줄기를 잘 잡아야 한다. 한 번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평생 그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고, 독특하고 괴상한 교리에 재미를 들이면 보편적인 상식의 세계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끝으로 이 모든 이단들을 뛰어넘는 슈퍼 이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제도권 안에서 사회적인 위치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지닌 '종교' 집단이다. 아무도 이단이라고 할 수 없는 사회적 위치를 지니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왜곡된 집단이 있다. 정치적 집단도 이단에 가깝다. 아니,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수 있다. 예컨대 소설 <완득이>에 나오는 것과 같은 불법체류 다문화인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 시설로서의 교회라든지, 좌파 운동권의 아지트와 같은 교회, 또는 외양은 그럴듯하지만 극우적 정치 이슈로 가득하여 성경을 왜곡해서라도 정치적 논리를 관철시키려는 곳도 결국 잘못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곳은 사회에서 굳이 이단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크게 의미가 없는 교파이며 교회이다. *** 세분화하자면 끝도 없지만 대략 이 정도를 언급해 볼 수 있다. 여기 다룬 특징을 지녔다고 해서 전적으로 악하거나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성경이 경고하는 '다른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자들이 더러 있도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6~9) 기독교는 상식의 종교다. 불신자가 이해할 수 없고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신비에 눈을 뜨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참된 기독교는 자신들이 간직한 신비를 가지고도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는 세상 법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기본 질서이며, 불신자나 신자 모두를 아우르는 화평과 질서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 (고전 14:33) 이런 기준에 따라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속히 그곳을 탈출하고, 기존의 위험요소를 지닌 곳은 최대한 건전하고 상식적인 바른 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김재욱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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